기분좋은 바람이 살랑거리던 봄, 지인으로부터 다육식물 화분 하나를 선물받았다. 작은 화분에 아기자기하게 심겨진 다육식물을 키우는 일은 꾀나 흥미로웠다. 얼마 되지 않아 다육식물에서 꽃대가 하나 올라왔고, 곧 꽃대에서는 작은 꽃봉오리들이 아롱아롱 생겨났다. 그 꽃봉오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지루한 일상에도 이런 예쁜 꽃봉오리가 생겨나겠지라는 설렘이 피어올랐고, 이 설렘과 기대는 곧 이 꽃을 어떻게든 피워보리라는 강한의지로 뒤바뀌었다. 그때부터 다육식물에 대한 인터넷 검색과 책을 찾아보며 다육식물 꽃피우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다. 그 작고 가녀린 꽃대가 휘어질 만큼 알알이 맻혀있던 꽃봉오리들은 꽃이 피지 못한채 말라갔다. 하얀 꽃봉오리들은 노랗게,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거지?”
세상의 수 많은 남자 여자중에 내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그 결실로 얻은 새생명 내아이를 바라보는 설렘과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가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보고 느끼며 부모들은 결심한다. 내 아이를 세상의 누구보다 사랑해 주고, 어느 누구보다 아껴줄 것이라고. 나는 집 앞 슈퍼에서 세일하는 오래된 과일을 사 먹을 지언정, 내 아이에게는 올가닉 사과를 먹이고, 나는 덜 입고 덜 먹더라도 내 아이는 어디 나가 기죽지 않게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부모의 사랑, 기대, 설렘은 곧 좋은 부모가 되리라는 강한의지를 불태우게 하고, 아이에게 좋다는 것들을 쫒아 다니며 자녀 양육,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게 한다. 내 아이의 성공과 행복은 곧 부모들의 삶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엇나가고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네가 감히 어떻게 내게 그럴수 있니? 너는 나의 희생과 노력과 사랑으로 키워진 아이인데..’ “대체 내 아이는, 그리고 나는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다 말라버린 꽃봉오리를 들여다보다가 바짝말라 떨어져버린 이파리를 발견했다. 아, 물이 부족했구나. 처음 다육식물을 받았을 때는, 흙의 상태를 살피며 물을 주었다. 그러나 욕심이 생겨나면서 부터는 이사람 저사람이 말하는 정보에 기대기 시작했다. 더 좋은 환경을 주려고만 했지 정작 다육식물의 상태는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의 부모세대에서는 감히 접해보지도 못하는 다양한 양육정보와 교육정보들이 넘쳐난다. 어느 부모든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이 정보들에 닿을 수 있다. 부모는 열의에 넘쳐 이 정보들을 내 아이에 다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정보에 기대어 양육을 하다보면 정작 내아이의 상태, 내아이의 성격, 내아이의 생각 그리고 마음상태는 무시하게 된다. 내 아이에게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기보다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환경’이라는 틀에 내 아이를 끼워 맞추게 된다.
넘쳐나는 정보들을 기준없이 받아들이게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일관성 없는 양육환경을 제공하거나,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진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고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잣대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다는 음식도 내 아이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되듯이, 어떤 좋은 프로그램이나 환경이라도 내 아이와 맞지 않는다면 독이 된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다. 잠깐 멈추고 내 아이의 상태를 바라보자. 이 잠깐의 찰나가 내 아이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줄 중요한 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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