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칼럼]영웅이 필요해

지루하리만치 평범하고 평안했던 일상이 일순간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을것 같았던 오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매일 들르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고 매일 걷던 그 길로 출근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 그 익숙한 그 길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내달리기 시작한다.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은 이상한 무기로 무차별 공격을 해온다.


‘아! 이 꽃다운 나이에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것인가!’ 수만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 죽음의 불안도 잊게할 만한 꽃미남 얼굴에 괴상한 옷차림의 영웅이 나타났다. 이, 사람인지 뭔지 모를 존재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맨손에서 이상한 빛을 쏘며 악당들을 마구마구 물리친다.


얼마 전 어벤져스-엔드게임이 폭발적인 반응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예전에는 이런 히어로 무비는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만화영화로 치부되었다. 우스광스런 옷을 입고 오글거리는 포즈를 취하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는 아이들에게나 영웅이지, 어른들에게는 우스웠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이제는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에게도 영웅이 필요한 세상이다.


영화처럼 세상이 멸망할 위기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만큼 삶이 각박하고 힘에 부친다. 때론 말도 안되는 갑질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사건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의 공격처럼,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힘든 일들이 잘 지나갔구나 안심하는 순간, ‘이 꽃다운 나이에’ 내 마음의 공격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줄 알았는데, 손을 쓸수 없는 생사를 오고가는 오늘이 되고야 만다. 어디 나를 구원해줄 영웅없나?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우리가 꿈꾸는 그런 영웅도 통쾌한 상황 반전도 없다. 살아보려고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우리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영웅의 삶에도 성공과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웅 또한 실패와 패배를 경험하기도 하고, 동료를 잃은 슬픔이나 자신의 가치관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그 또한 자신의 문제와 자신이 처한 싸움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엄청난 힘과 능력이 있든 없든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당면한 문제를 똑바로 마주하고 변화를 시도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이다. 영웅이 영웅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그가 우리와는 다른 엄청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문제와 적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문제와 마주한다는 것은 사실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문제로 인해 야기된 상황과 결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이루어졌다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문제들과 싸울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진 셈이다.

문제와 맞서 싸우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다. 우리의 싸움은 영화처럼 2-3시간 안에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또다른 문제를 가져오기도 하고, 다 해결된듯 보였던 일들이 다시 터져나오기도 한다. 문제를 다룰 때 문제해결에 대한 너무 큰 환상을 갖게되면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그보다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있는 자신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 성숙과 성장이야말로 또 다른 적, 새로운 문제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진짜 영웅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서 영화같은 사이다 영웅은 없다.


우리 삶에서 진짜 영웅은 매 순간 고뇌하고 성장하며 한걸음 한걸음씩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자, 이제 영웅이 나타나야 할 순간이다. 오늘도 세상을 구하러, 나 자신을 구하러 한번 떠나볼까?


06/13/2019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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