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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칼럼] 내 맘 알지?

떨어진 학교 성적 때문에 엄마에게 한 소리 들은 어느날 저녁, 밥상 위에 왠일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왕갈비가 쌓여있다. 잔칫날에나 볼 수 있던 귀한 왕갈비가 왠 일일까, 좋으면서도 아까 혼났던 일 때문에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는 아들이 슬쩍 엄마를 올려보며 묻는다.

“이거 나 먹어도 돼?”

그러자 아들은 보지도 않고 맞은 편에 털썩 앉은 엄마가 툭 던지는 말.

“그럼 이걸 나더러 다 먹으라구?” 아, 먹으라는 말이구나. 기쁘게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아들 마음은 왠지 찝찝하다. 내가 언제 엄마더러 혼자 다 먹으라고 했나. 먹어도 돼냐고 물었을 뿐인데, 어느새 엄마에게 왕갈비 한 접시를 혼자 다 먹으라고 한 불효자(?)가 되어 있다. 그냥 “응, 많이 먹어, 우리 아들” 해주면 안되나.

젊은이들 사이에 한참 유행하던 시크한 연인의 말투가 있다. 며칠 밤을 고민하며 준비한 선물을 건넬 때도 “오다 주웠다. 너 가져라” 한 마디만 툭 던진다. 그럼 듣는 사람은 “오마나, 머 이런 걸 주워왔어” 하며 기쁘게 받아야 한다. 서울에선 어딜 가나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라는 맘없는 인사말을 들어서 ‘진심이 1도 없다’ 란 말이 유행이라는데, 어느새 우리는 진짜 사랑한다는 진심도 진심없이 표현하고 있다.

안다. 상대에게 가장 귀하고 좋은 말만 들려주고 싶은데 그게 오히려 부담되고 손발 오그라 뜨릴까봐 일부러 던지듯 귀하지 않은 말투로 내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제발 알아먹어줘.

아니, 모른다. 쑥스러움으로 가장하고 의뭉스럽게 얼굴을 찌푸린 채 ‘왜 못 알아먹어!’ 라고 소리치는 너의 진심, 못 알아듣겠다. 더군다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툭 내뱉은 말에 마음까지 상할 때는 꼭 내가 열등생처럼 느껴진다. 난 빨간 신호등 앞에 주춤거리고 서있고 넌 그건 초록 신호등이라고 우길 때.

왜 그럴까. 감정을 실어 하는 말이 감정 없이 툭 내뱉는 말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감정을 실어 말하려면 우선 가만히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 또한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정을 들여다보며 혹시 드러날 망설임이나 불안, 감정적인 고통을 다루기 보다는 차라리 몸이 고생하는 쪽을 택한다. 상대에게 진심을 드러내면 거절당할까 두려운 내 마음에 갑옷을 입히고, 진심을 말하느니 ‘오다 줍는’ 쪽을 택한다.

예전에 조강지처 놓고 바람피우던 남자가 결혼을 조르는 어린 연인에게 그러더라. “그런 건 다 포장일 뿐이야. 내 마음이 여기 있는데 그깟 포장이 뭐 그리 중요해?” 그러자 어린 연인이 말했다. “사랑하면 포장도 예쁘게 해주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렇다. 이왕 밤잠 설쳐가며 준비한 선물이라면 포장도 곱게 해서 받고 싶다. “널 위해 준비했어” 라는 수줍은 말과 함께. 준비하는 내내 널 생각했어.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어. 네가 이걸 볼 때마다 날 떠올렸으면 좋겠어. 할 말이야 많지 않겠는가. 입이 안떨어지걸랑 “이거..” 하고 뒷머리만 벅벅 긁어도 좋겠다.

분홍분홍 말랑말랑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거든 비겁하게 거친 말로 포장하지 말고 알록달록 포장지에 싸서 조심스레 건네주자. 해사한 너의 진심이 우리의 날을 밝힐 수 있도록.


06/03/2019<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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