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상담사]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의 맛

어느 넌센스 퀴즈 중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것은? 이라는 질문에 ‘나이’라는 우습지만 사실인 대답처럼,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2020년도 새해를 맞이하며 원하던든 원치 않든 그렇게 모두가 한 살씩을 더 먹었다. 어렸을 적에는 ‘나 이제 5살이야’ ‘나 이제 형이야’라고 말하며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지는 나이가 애석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이가 듦에 있어 좋은 점을 찾아보니 ‘무뎌짐’ 이 아닐까? 라고 생각 해 본다. 어렸을 적이었더라면 예민하게 반응했을 친구들의 뒷담화에 이제는 그만큼 반응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집에 놀러 온 손님이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서글퍼 눈물까지 흘렸던 마음이 여러 모양의 이별을 겪으며 쿨하게 보내줄 수 있는 마음이 됐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반복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다 보니 예민했던 마음이 이내 무뎌져 슬픔도, 화도 민감하지 않게 지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무뎌짐’이라는 단어에 ‘기쁨, 환희, 설렘, 감동’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니 썩 달갑지만은 않다. 처음 탔던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꼈던 설렘, 아빠 손에 들려있던 치킨을 보며 느꼈던 기쁨, 하교 후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의 맛. 사소한 것에 있어서 느꼈던 즐거움과 기쁨들이 나이가 들며 더 이상 그만큼의 감동과 감탄이 나오지 않게 돼버린다.


노인 상담을 하며 이번 한 주 어떻게 지내셨어요? 라는 안부의 질문에 노인들은 ‘하루하루가 똑같지’, ‘우리 나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어’, ‘매일이 같아서 기억도 잘 안나’라고 삶에 무뎌진 반응을 쏟아낸다. 이렇게 ‘무뎌짐’은 삶에 있어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혹, 이 감정이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더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삶에 감동스럽고 감사할 수 있을 만한 순간들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예를 들면, 위에 글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빈 종이에 나의 삶 전반에서 ‘기쁨, 환희, 설렘, 감동’과 같은 감정을 느꼈던,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과거의 사건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그 다음 최근 1주일간 비슷한 감정을 느꼈거나 유사한 사건들을 적어보자. 그럼으로 나의 어떤 감정들이 무뎌졌는지에 대해 평가해 보는 시간을 갖고 어떤 상황들이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또한, 반복되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보는 것이다. 크고 웅장한 일들이 아니어도 좋다. 예를 들면, 샤워 후 은은히 나는 기분 좋은 향, 길을 걷던 중 좋아하던 음악이 흐를 때 나도 모르는 흥얼거림, 이불을 덮었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감싸주는 포근함, 새로 산 옷을 입고 외출하는 기분. 이처럼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 그 순간을 즐기며 익숙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상황과 감정에 대해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무뎌지다’라는 단어는 “느끼고 깨닫는 힘이나 표현하는 힘이 부족하고 둔하게 되다” 혹은 “칼이나 송곳 따위의 끝이나 날이 날카롭지 못하게 되다”라고 정의한다. 만약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칼이나 송곳같이 날카롭지 못하게 무뎌져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래도 괜찮다. 무뎌진 칼날을 갈며 새것과 같이 다시 만드는 것처럼 내 무뎌진 마음도 위의 보기와 같은 훈련을 통해 다시 어렸을 적 느꼈던 특별하고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삶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2/20/2020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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